설날(18일) 아침 블로거 komawa 님이 쓴 훌륭한(!) 블로그 포스트(블로거뉴스)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게 기사인가요? 이게 기사냐고요.” 흥미로운 댓글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댓글이다. 블로거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독자들이 이 댓글을 단 분 말고도 꽤 될 테니 말이다.

우리 집 설 차례상을 공개합니다 / komawa
http://blogbbs1.media.daum.net/griffin/do/blognews/life/read?bbsId=B0005&articleId=29340

댓글

블로거 komawa님의 <우리 집 설 차례상을 공개합니다>에 달린 댓글.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이게 기사다.” 기사라는 글이 현재 이 사회에서 생겨나고 있는 의미 있는 정보를 담는 글이라면 말이다. 전문용어를 좀 더 섞자면, 대안미디어 전문가인 크리스 아톤(Chris Atton)은 이처럼 현장에서 어떤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직접 보도하는 일을 ‘네이티브 리포팅(native reporting)’이라고 명명했다(김익현, <웹2.0 시대의 온라인 미디어>, 78쪽).

관련 글: 네이티브 리포팅의 중요성 / peony

komawa 님의 블로그 포스트 <우리 집 설 차례상을 공개합니다>에는 전라도식과 경상도(부산)식이 섞여 있는 서흥 김씨 집안의 차례상이 어떠한지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게다가 차례상을 차리는 데 걸린 시간과 든 비용까지 들어 있다. 그리고 기사 끝에는 다른 블로거의 동참을 권유하는 은근한 사족이 있다. “문득 다른 집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차례상

블로거 komawa님이 공개한 서흥 김씨 집안의 올 설 차례상 ⓒ komawa

komawa 님의 블로거뉴스가 그다지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komawa 님의 글이 기사도 아니라서가 아니다. 이 기사가 블로거 리장 님이 여러 블로거들과 함께 해낸 전국 대학등록금 공동취재 사례처럼 올 설 전국 각 지방의 다양한 차례상 모습들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외려 블로거들이 더 쉽고 편하게 공동취재를 벌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블로거뉴스 편집진 탓이다. 아쉽다.

관련 글: 블로거들이 해낸 전국 대학 등록금 공동 취재 / peony

현재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가 저널리즘 영역에서 어느 정도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블로거뉴스를 쓰고 블로거뉴스를 읽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기사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을 연주했던 몇몇 뮤지션들이 ‘펑크록’이라는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듯이,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를 쓰고 있는 몇몇 블로거들이 지금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 무대가 바로 블로거뉴스라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고 영광이다.

관련 글: 블로거뉴스는 신나는 '펑크록'이다 / peony


1인 미디어 블로그, 소수자들의 '확성기'
-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의 사례를 중심으로

0.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

1. 올드미디어 vs 뉴미디어

1-1. 이 시각 대한민국의 톱뉴스
1-2. 이 시각 당신의 톱뉴스는?

2. "왜 꼭 기자를 통해 말해야 하나?"

3. 블로거뉴스는 신나는 '펑크록'이다

4. 당신이 소수자라면

4-1. 네이티브 리포팅의 중요성
4-2. 소수자가 직접 쓴 블로거뉴스들

5. 당신이 활동가라면

5-1. "여러분, 이제 블로그에서 시위하세요"
5-2. 자신만의 이슈를 밀고 나가는 블로거들
5-3. 블로거 '롱테일 사랑' 세상을 움직이다

6. 부록: 타인(네티즌)에게 말 걸기

6-1. 티베트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려면?
6-2. 노동자·농민·청소년·여성운동의 사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전자기타와 저렴한 멀티트랙 녹음기, 그리고 영국에서 결성된 펑크록그룹인 섹스 피스톨즈의 명곡들이 나타나면서, 음악적 훈련을 받지도 않고 눈에 띄는 재능이 없는 10대들도 밴드를 결성해서 노래를 취입하게 되었다.

펑크록이 급격하게 퍼져나가자 그것은 무대 전면에 있던 10대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또래들이 3가지 화음을 서툴게 연주하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분명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뮤지션이 되기 위해 음악을 배우려면 기존의 대가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즉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들 히트곡을 연주하고, 악보를 읽고, 어쩌면 음악학교에도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뮤지션이 되기 위해 내야 할 학습비용이라고 여겼다.

순회공연을 하고 표준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뮤지션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로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뮤지션에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엉성하고 형편없는 창작연주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음악을 제대로 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펑크록은 뮤지션들의 생각을 바꿨다. 펑크록은 "좋아, 네겐 기타가 있어. 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연주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주해봐! 재능있는 뮤지션이라면 문제될 게 없어.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펑크록을 통해 우리는 신선한 목소리와 새로운 사운드, 그리고 생기와 반체제적 감정의 정수를 맛보게 되었다. 평범한 이들이 재미있게 놀면서 추앙받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경제용어로 설명한다면, 펑크록은 창조를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었다고 할 수 있다. / <롱테일 경제학>(크리스 앤더슨, 랜덤하우스코리아) 中

<롱테일 경제학>을 읽다가 여러 차례 곱씹게 된 부분. 마치 블로거뉴스를 묘사하는 것 같아서였다. 2006년 블로거뉴스가 한 일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뉴스 또는 기사의) 창조를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블로거기자들과 블로거뉴스 독자들은 "신선한 목소리와 새로운 사운드, 그리고 생기와 반체제적 감정의 정수를 맛보게 되었다".

우리가 느꼈던 "반체제적 감정", 즉 체제에 반하며 느꼈던 희열(?)은 여러 기득권 세력들 중에서도 뉴스(사회적 의제)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던 계층들에 대한 것이었을 게다. "음악(기사 쓰기)을 배우려면 기존의 대가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믿음"을 세상에 퍼뜨리고, 또 "악보를 읽고, 음악학교에도 다니는 것(이른바 '언론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뮤지션(기자)이 되기 위해 내야 할 학습비용"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낸 계층 말이다.

하지만 이 계층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질서'를 해체시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다. 전자기타(블로그)와 멀티트랙 녹음기(블로거뉴스),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의 명곡(몇몇 모범이 될 만한 블로거뉴스). 이것들이 준비되자 곧 "음악적(기사 쓰기) 훈련을 받지도 않고 눈에 띄는 재능이 없는 10대(블로거기자)들도 노래를 취입하는(블로거뉴스를 쓰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 "펑크록(블로거뉴스)은 (다른) 뮤지션(블로거)들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 "좋아, 네겐 기타(블로그)가 있어. 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연주할(써야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주해봐(써봐)! 재능있는 뮤지션(블로거)이라면 문제될 게 없어.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

어제 내 블로그 '낯설게 하기' 방명록에 "저도 블로거기자단 해보고 싶던데 부족한 중생이라…"라는 글을 남긴 사랑초 님(을 비롯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많은 블로거들)에게 나는 이 글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 글의 요점을 다시 정리해 쓰자면, 딱 한 문장이다. 블로거뉴스는 신나는 '펑크록'이다.

그러니까 '기타 메고 그냥 한바탕 뛰면 되는 것'이 바로 블로거뉴스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엉성하고 형편없던 창작 연주"가 "섹스 피스톨즈의 명곡"으로 발전하게 돼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 놀면서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다". 이어 "뮤지션(블로거)들의 생각을 바꾸고", 기존 체제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질서'도 넘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도 바꾸게 된다. 나는 신나는 '펑크록'의 힘을 깊이 신뢰한다.

▶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듣기: http://blog.daum.net/media_js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