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알게 된 것 하나 더. 신경림 시인이 <낙타>를 새 시집의 표제시로 골랐다는 사실(하긴 출판사 편집자가 골랐을 수도 있겠다). 4년 전 가을(그러니까 ‘낭인’이었을 때), 이 시를 읽고는 수첩에 옮겨 적었었는데.

관련 기사: 삶과 죽음 분별 부질없는 ‘황혼의 노래’ / 한겨레

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블로거뉴스를 편집하다 보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모습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나는 갈 수 없는 곳들의 절경을 한자리에 앉아 볼 수 있으니 좋기도 하지만, 다른 블로거들은 저런 절경을 만끽할 때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오늘 만난 아름다운 모습은  『太陽』님이 보내준 ‘밤 벚꽃’(『太陽』님은 고유석 님과 함께 DSLR 입문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매력적인 ‘밤 벚꽃’ 사진(아래)도 좋았지만, 내가 한때 폭 빠졌던 시 <밤 벚꽃>(이면우 시인)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해 더욱 좋았다. 오늘 저녁엔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펴봐야겠다.

'밤 벚꽃' 매력적으로 찍는 방법 / 『太陽』
관련 글: 블로거기자들, 책 출간 '러시'

밤 벚꽃 / 이면우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천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안도록
천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밤 벚꽃

밤 벚꽃과 가로등 ⓒ『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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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읽을 때 나의 내면은 시와 더불어 흔들린다. 마치 두 개의 소리굽쇠가 만나 서로를 흔들듯 시는 나를 흔들고, 나는 시를 흔든다. 말하자면 시와 나는 공명(共鳴)한다.

그렇게 공명하며, 나는 시인의 세계를 만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그려진 시인의 세계는 어둡고 쓸쓸하다. 그곳엔 초라한 식당과 붉은 유곽 따위가 있을 뿐이다. 식욕과 성욕에 허기진 사내들이 그 식당과 유곽에 드나들고, 이런저런 노동에 지친 여인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시인은, 그리고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기는 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인과 시인의 가족은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아침녘 밥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으로 술집으로 탈출하듯 뿔뿔이 흩어져야만 한다. 뚜렷이 갈 곳이 없는, 좀 거칠게 말해, 대학씩이나 나와 놀고먹는 시인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귀가한다. 시간이 아프게 흐르고, 시인은 마주선 삶에 대해 점점 주눅이 들어간다. 비슷한 삶을 겪어내고 있는 시인의 여동생들 ― 아버지와 오빠의 등 뒤에서 스타킹을 걷어 올리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시인의 여동생들은 하릴없이 눈물이 많아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종류의 삶을 알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은 오랜 시간 ‘방 한 칸’에서 살았다. 때로 그 ‘방 한 칸’은 건물 주차장을 개조한 과일가게의 곁방이었고, 때로 열 평이 채 안 되는 슈퍼마켓의 다락방이었다. 우리는 생쥐가 구멍을 드나들듯 과일가게의 곁방을 드나들었고, 다람쥐가 나무를 타듯 슈퍼마켓의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방은 둘 다 좁고 어두웠다. 특히 슈퍼마켓의 다락방은 천장마저 낮았다. 우리는 뒤뚱뒤뚱한 오리걸음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느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데 이런 느리고 조심스러운 ‘방 한 칸’의 삶엔 어느 날 불쑥 틈입해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경우 그것은 쥐 한 마리였다. 쥐는, 보름 전쯤 시인의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식구들의 가슴 위를 돌아다녔다. 식구들이 모두 깼고, 쥐를 잡기 위해 뛰었다.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겼다. 막내 여동생은 밖에 나가 혼자 울다 들어왔다. 울며, 시인의 여동생은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렸던 가난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가난은 이렇듯 가난한 자에게 그들의 가난을 알릴 때 결코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송곳처럼 단번에 가난한 자의 가슴을 찌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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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집을 덮고,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이 ‘방 한 칸’의 삶들, 이 가난의 풍경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발전’과 더불어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뭔가 숨기고 있다. 우리는 비추어야 할 것을 비추지 않고, 돌보아야 할 것을 돌보지 않으며 함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아득한 저 옛날 동족을 잡아먹던 식인종들의 모습처럼 무모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여 나는 귀양 떠나는 시인의 심정을 이해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시인은 마침내 스스로 귀양을 떠난다.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 넘어 멀리, 한없이 멀리 떠난다. 더 이상 비추어지지 않고, 돌보아지지 않는 자의 마지막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뛰는 사람보다 더딘 기차를 타고, 길 끝이 무덤인 철로를 달려 시인이 가게 될 곳은 어디인가. 시인은 서해를 넘어, 중국을 넘어, 인도를 넘어, 유럽과 태평양을 넘어, 다시 속초로, 다시 세상의 끝으로, 다시 세상의 끝에 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으로 돌아온다. 시인이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그곳, 눈물겨운 그곳으로.

나는, 눈물마저 얼어버린 이 계절에, 당신에게 김중식의 시를 권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다. 고준성(2002.11.2)

*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돌아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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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사무원’은 목하 수행 중이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의자 고행을 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의자 고행은 힘들고 고달프다. 그러나 그는 견딘다. 힘들고 고달픈 의자 고행에 등이 굽고, 얼굴이 창백해져도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외려 더욱 꿋꿋하게 손익관리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는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한다. 그의 수행은 점점 깊은 경지로 들어선다(김기택, <사무원>).

그러던 어느 날 이 성실한 수행자 앞에 그의 상사가 나타난다. 등이 굽은 사무원은 거북이 같고, 배가 나온 상사는 돼지 같다. 돼지가 거북이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묻는다. 거북이의 등에서 작은 목이 올라와 좌우로 흔들린다. 갑자기 돼지의 목소리가 커진다. 거북이의 목이 도로 등 속으로 들어간다. 거북이의 등은 더 굽어지고, 돼지는 노래를 시작한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거북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싫증난 돼지는 돌아간다. 수행은 일단 계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봄날, 계속해서 수행정진하는 사무원의 앞에 한 젊은이가 다가온다. 젊은이의 구두 소리가 힘차다. 힘찬 구두 소리만큼 힘찬 목소리로 젊은이가 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말한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자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그의 굽은 등을 툭 친다. 그의 등이 바스러진다. 젊은이가 이번엔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그의 목이 떨어진다. 이어 그의 어깨가 떨어지고, 그의 몸이 온통 부서져 내린다. 사무원의 수행이, 아니 삶이 끝난다(김기택, <화석>).

이렇듯 불현듯 끝나버리는 수행자의 삶에 우리는 제법 익숙하다. 오래 전, 1970년 11월. 그때도 우리는 한 수행자의 삶이 끝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때 그 수행자는 노동자였다. 그 역시, 김기택의 ‘사무원’처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의자 고행을 했다. 재단사였던 그의 머리 위엔 언제나 희미한 전등불이 있었고, 전등불 위엔 낮은 천장이 있었으며, 천장 아래 모든 곳엔 자욱한 먼지가 있었다. 그는 그 자욱한 먼지 속에서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됐다. 짐승처럼, 그는 오로지 일하기 위해 먹고, 일하기 위해 자고, 일하기 위해 일했다. 그러다 마침내 분노했고, 13일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는 활활 타오르며 그의 삶과 그의 수행을 끝마쳤다.

모두가 알듯 이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그로 인해 수백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눈을 떴다. 그리고 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그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더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됐다. 원풍모방과 동일방직에서, 반도상사와 방림방적과 YH무역에서 노조건설 투쟁이 잇달았다. 이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노동운동은 꾸준히 무르익어 결국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까지 다다랐다. 씨앗이 숲을 이루었다.

김기택의 ‘사무원’은 바로 이 씨앗에 해당한다. 그는 홀로 묵묵히 수행하다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지는(실직하는) 이 시대 이 사회의 사무원이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자들의 눈을 뜨게 했듯 지금 이 사무원의 실직이 사무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있다. 사무원들이 눈을 떠 바라보는 자신들의 모습은 그저 암담하다. 그들은 세상 그 무엇에도 주인이 아니다. 회사든 사회든 주인은 항상 따로 있고, 그들은 심지어 제 정신의 주인도 아니다. 그들은 가련하게도 제 정신을 텔레비전에 맡겨놓은 지 오래다(김기택, <나는 매일 밤 너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니 아직, 그들이 과연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씨앗이 과연 숲을 이룰 수 있을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희망의 근거는 있다. 금융사무원들로부터 시작된 사무직 노조운동은 사무금융노련, 언론노련, 전교조를 거쳐 바야흐로 공무원노조에 이르고 있다. 눈을 뜬 사무원들이 꾸준히 뭉치고 있다. 그들의 꾸준한 뭉침이 계속되는 한 사무직 노조운동은 끝없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 느리지만 꿋꿋하게 씨앗이 숲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울창한 숲을 꿈꾸며 작은 씨앗을 뿌리는 시인, 그가 바로 김기택이다. 놀랍겠지만, 그는 혁명의 시인이다. 고준성(2002.12.7)

사무원 /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연애란?

연애란 둘 사이의 미디어를 발전시키는 것. 그러니까 두 존재 사이의 소통의 수단을 조심스럽게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동의하시나요?). 오랜만에 들국화의 노래 <매일 그대와>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아래는 연애의 첫 단계와 마지막(?) 단계를 보여주는 두 편의 시. 정일근의 시 <나무, 즐거운 전화>는 “단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나무들의 “깨끗한 사랑”을 노래한다. 이때 연애 중인 나무와 나무 사이의 미디어는 고작(?) “바람”이다.

반면 정현종의 시 <꽃 深淵>은 연애 중인 존재들이 사용하는 훨씬 더 농익은 미디어들을 보여주고 있다. 달과 꽃과 인간. 이들은 서로에게 녹아들며 서로를 “실신케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때 이들이 사용하는 미디어는 “목”, “손”,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이다.

*

나무, 즐거운 전화 / 정일근

나무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람 부는 날 숲으로 가보셔요. 바람을 투명한 전홧줄 삼아 뚜와루 뚜와루 즐거운 나무들의 手話 혹은 樹話. 그리워 살금살금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서지 않아도, 안타까워 안타까워 살 비비며 불태우지 않아도 기쁨 넘쳐나는 나무들의 깨끗한 사랑법. 저 단정한 거리를 두고도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들의 사랑을 아시는지요? 사랑이여, 나도 이제 그대 앞에 한 그루 잎 많은 나무로 마주서고 싶습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 바람이 전홧줄을 놓아줄 때 잎새 하나 하나 사랑의 푸른 수화기를 들고 즐거운 전화를 걸고 싶습니다. 뚜와루 뚜와루……

*

꽃 深淵 / 정현종

지난봄 또 지지난봄
목련이 피어 달 떠오르게 하고
달빛은 또 목련을 실신케 하여
그렇게 서로 목을 조이는 봄밤.
한 사내가 이 또한 실신한 손
그 손의 가운뎃손가락을
반쯤 벙근 목련 속으로 슬그머니 넣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으나 달빛이 스스로 눈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