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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7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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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읽을 때 나의 내면은 시와 더불어 흔들린다. 마치 두 개의 소리굽쇠가 만나 서로를 흔들듯 시는 나를 흔들고, 나는 시를 흔든다. 말하자면 시와 나는 공명(共鳴)한다.

그렇게 공명하며, 나는 시인의 세계를 만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그려진 시인의 세계는 어둡고 쓸쓸하다. 그곳엔 초라한 식당과 붉은 유곽 따위가 있을 뿐이다. 식욕과 성욕에 허기진 사내들이 그 식당과 유곽에 드나들고, 이런저런 노동에 지친 여인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시인은, 그리고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기는 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인과 시인의 가족은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아침녘 밥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으로 술집으로 탈출하듯 뿔뿔이 흩어져야만 한다. 뚜렷이 갈 곳이 없는, 좀 거칠게 말해, 대학씩이나 나와 놀고먹는 시인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귀가한다. 시간이 아프게 흐르고, 시인은 마주선 삶에 대해 점점 주눅이 들어간다. 비슷한 삶을 겪어내고 있는 시인의 여동생들 ― 아버지와 오빠의 등 뒤에서 스타킹을 걷어 올리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시인의 여동생들은 하릴없이 눈물이 많아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종류의 삶을 알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은 오랜 시간 ‘방 한 칸’에서 살았다. 때로 그 ‘방 한 칸’은 건물 주차장을 개조한 과일가게의 곁방이었고, 때로 열 평이 채 안 되는 슈퍼마켓의 다락방이었다. 우리는 생쥐가 구멍을 드나들듯 과일가게의 곁방을 드나들었고, 다람쥐가 나무를 타듯 슈퍼마켓의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방은 둘 다 좁고 어두웠다. 특히 슈퍼마켓의 다락방은 천장마저 낮았다. 우리는 뒤뚱뒤뚱한 오리걸음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느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데 이런 느리고 조심스러운 ‘방 한 칸’의 삶엔 어느 날 불쑥 틈입해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경우 그것은 쥐 한 마리였다. 쥐는, 보름 전쯤 시인의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식구들의 가슴 위를 돌아다녔다. 식구들이 모두 깼고, 쥐를 잡기 위해 뛰었다.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겼다. 막내 여동생은 밖에 나가 혼자 울다 들어왔다. 울며, 시인의 여동생은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렸던 가난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가난은 이렇듯 가난한 자에게 그들의 가난을 알릴 때 결코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송곳처럼 단번에 가난한 자의 가슴을 찌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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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집을 덮고,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이 ‘방 한 칸’의 삶들, 이 가난의 풍경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발전’과 더불어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뭔가 숨기고 있다. 우리는 비추어야 할 것을 비추지 않고, 돌보아야 할 것을 돌보지 않으며 함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아득한 저 옛날 동족을 잡아먹던 식인종들의 모습처럼 무모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여 나는 귀양 떠나는 시인의 심정을 이해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시인은 마침내 스스로 귀양을 떠난다.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 넘어 멀리, 한없이 멀리 떠난다. 더 이상 비추어지지 않고, 돌보아지지 않는 자의 마지막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뛰는 사람보다 더딘 기차를 타고, 길 끝이 무덤인 철로를 달려 시인이 가게 될 곳은 어디인가. 시인은 서해를 넘어, 중국을 넘어, 인도를 넘어, 유럽과 태평양을 넘어, 다시 속초로, 다시 세상의 끝으로, 다시 세상의 끝에 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으로 돌아온다. 시인이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그곳, 눈물겨운 그곳으로.

나는, 눈물마저 얼어버린 이 계절에, 당신에게 김중식의 시를 권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다. 고준성(2002.11.2)

*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돌아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