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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04 "여성 징병 논란? 출구는 모병제다" (8)

권인숙 명지대 교수

미디어다음 김준진

“출구는 모병제다.”

지난주 미디어다음 기자와 만난 젊은 여성학자 권인숙 교수(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사진)의 말이다. 그는 “여성 의무복무제는 군대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논의의 출구를 막아버릴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교수의 이런 발언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군 관련 논의의 방향을 모병제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당부다.

권 교수가 이처럼 모병제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선 데에는 돌고 도는 군 관련 논란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깔려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됐던 여성 의무복무제나 군 가산점 논란이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권 교수는 그 이유를 “군 관련 논의들이 항상 성대결로 변질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와 관련해 “매번 일어나는 논의들이 항상 다른 싸움으로 바뀌기 때문에 (군 가산점 제도를 대체할) 군필자 보상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등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6년 전 위헌 판결을 받은 군 가산점 제도를 다시 살리자는 ‘해프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에 “징병제 등 군 문제에 대해 사회 전체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군 문제를 건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론문화가 정착한 뒤”라는 조건 아래 더 큰 틀에서 모병제를 본격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권 교수는 특히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절반인 “여자들도 군대를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모병제를 논의하는 일은 한 나라가 국방정책의 노선을 어떻게 잡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모병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한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데올로기가 퇴색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가 더는 이 논의를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권 교수는 1982년 대학 입학 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전념하다가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군사주의와 젠더(성) 문제에 관한 세계적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 교수(클라크대학교)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한국의 군사문화를 도발적으로 고발한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다음은 권 교수와 한 일문일답.

- 6년 전 위헌 판결이 났는데도 군 가산점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한나라당 몇몇 의원들이 이 제도의 부활을 추진하자 인터넷에서는 곧바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오보로 밝혀졌지만, 국방부 안에서 이를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정책 입안자들이 계속 병역 의무에 대한 국민들의 의욕을 되살리겠다는 쪽으로만 정책의 방향을 잡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니까 병역 의무를 다했을 경우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인데,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여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의 희생을 보상한다는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는 이들의 취업권을 억누른다는 것이다. 취업권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군가산점은 국민들 중 일부가 이런 기본권을 누리는 데 심각하게 차별을 받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군가산점 제도가 있던 1998년 7급 국가공무원 일반행정직 채용시험 결과를 보면, 합격자 99명 중 72명(72.7%)이 제대군인이었다. 가산점 혜택을 받지 않고도 시험에 합격한 이는 단 3명(3.3%)에 불과했다.

이런 명백한 차별이 군가산점 제도가 생긴 1961년부터 38년간 계속됐다. 이 때문에 1999년까지 공무원은 대부분 군필자들뿐이었다. 위헌 판결은 이런 차별이 부당하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논의를 되풀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군필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현재 이들이 받는 보상은 호봉 인정밖에 없다. 이마저도 연봉제 회사가 늘어나면서 유명무실해지는 형편이다.

보상의 방법에는 크게 나눠 두 가지가 있다. 군가산점 같은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은 말하자면 직접적인 보상이다. 반면 국방의 의무를 다한 뒤 더 강한 사회적 발언권을 얻고 기타 기득권을 누리는 것은 간접적인 보상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남성 위주 사회다. 사회 전체에 가부장적 논리가 팽배하다. 군필자 본인들은 부인할지 몰라도, 군대에 갔다 온 이들은 여러 가지 간접적인 보상을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군필자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전혀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미 간접적인 보상을 많이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보상을 더 해주기 위해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기본권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또 이처럼 직접적인 보상 방법을 논의하는 데만 몰두해 있으면 군대에 관한 더 중요한 문제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지금은 군가산점보다 징병제 등 군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즉, 군필자에 대한 보상만 근시안적으로 논할 것이 아니라 군대와 징병제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더 큰 틀에서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사들을 사실상 무임으로 부리는 실태, 지나치게 긴 의무복무기간, 군 내부에 만연한 폭력 등 시급하게 다뤄야 할 것들이 많다.

- 큰 틀에서 군 문제를 논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6년 전 위헌 판결을 받은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그간 군필자 보상 등 작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소홀히 한 것 아닐까.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와 관련된 현실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내가 볼 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군대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실제로 1999년 위헌 판결 이후에도 군 문제는 매년 뜨거운 이슈였다. 이회창 씨 아들 사건을 비롯해 병역기피 의혹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군대 내 폭력 사건도 계속됐다. 2003년에는 병사 간 성폭력 사건까지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은 올해도 일어났다. 가장 큰 사건으로는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병사들의 자살 사건도 잇달았다. 이때마다 군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군 문제들은 현실적으로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매번 일어나는 군 관련 논의들이 항상 다른 단순한 싸움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성대결로 바뀌는 게 가장 대표적이다. 군 가산점 논란은 물론,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도 결국 성대결이 되고 말았었다.

이 때문에 군필자 보상, 양심적 병역거부 등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건설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저 군필자들의 집단적 분노가 여성이나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이들을 향해 쏟아지고 말 뿐이다. 그 뒤 달라지는 것은 없다.

- 군대에 대한 여성들의 발언권이 전혀 없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여성들이 평소 군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예컨대 국내 여성학계에서 징병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없는 것 같다.

징병제에 대한 여성학계의 연구가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 등에 관한 논문만 발표된 적 있다. 그러나 이게 여성들만이 군 문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실 우리 사회 전체가 군 문제에 무관심해왔다.

물론 군대는 항상 얘기한다. 대개 술자리에서 이야깃거리로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누가 더 군대에서 힘들었는지를 따지면서 군대에서 한 경험들을 나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도 서로 남성성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멈춘다. 이게 우리 사회가 군대에 대해 갖는 관심의 수준이다.

게다가 이런 대화를 할 때도 여성들과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이들은 소외된다. 대개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들으면서 웃기만 한다. 암묵적으로, 남성들이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는 남편과 아예 군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군대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몇몇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징병제 등 군 문제에 대해 사회 전체가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징병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또 군 문제를 건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러려면 군필자들처럼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이들도 차별 없이 군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여자들도 군대를 말할 수 있게 하라는 얘기다.

그런 뜻에서 1999년 군 가산점 논란은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 논란은 여성들이 군대와 관련해 처음으로 적극적인 발언을 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성대결로 변질되면서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군대에 대해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 올해 들어 여성 의무복무제를 실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제 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는 듯하다. 여성의 발언권 문제를 고려한다면, 이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여성도 군 문제에 대해 동등하게 발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를 찬성해야 한다. 반면 여성까지 군사주의 문화 속에 끌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여성 의무복무제를 실시하는 게 옳은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여성들이 군대를 간다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이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성들만 남성화되면서 군사주의 문화에 젖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여성 의무복무제는 군대 관련 여러 가지 논의의 ‘출구’를 막아버릴 수 있다. 출구는 모병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징병제를 유지하려는 이들의 논리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준다. 모병제에 대한 논의를 더 어렵게 하는 셈이다.

또 여성 의무복무제를 모병제로 가는 과도기적 제도로 시행한다 해도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에 여성들이 같이 참여하는 것은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대체복무와 그 방식을 먼저 논의해야 하는 게 순서다.

아울러 군대 내 성폭력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여성 군인의 수가 매우 적은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아직 이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지만, 미군에서는 90년대 내내 성폭력 사건이 계속됐다. 미 여군들의 수기들 들여다보면 성폭력 얘기가 대부분이다.

- 군필자 보상, 여성 의무복무제 등 모든 군 관련 논의의 방향을 모병제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 모병제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병제를 논의하고 실시하는 일은 한 나라가 국방정책의 노선을 어떻게 잡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나라와 군비경쟁을 벌이며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국방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 나라는 결코 징병제를 극복할 수 없다.

결국 모병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한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군대가 곧 강한 국가이며, 강한 국가가 돼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점검한다는 뜻이다.

징병제에 따라 군 복무를 하는 것이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여겨왔던 우리나라는 한 번도 이런 논리를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현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과연 강한 군대밖에 없을까. 이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모병제 도입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조차 안 해본 상황이다. 강한 군대가 많은 군인 수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인데도 여전히 우리 군대의 적정 군인 수를 따져보지도 않은 것이다.

물론 모병제를 실시하면 징병제를 유지할 때에 비해 국방비가 더 든다거나 하는 안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또 사회적 약자들만 군대에 가게 되는 따위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점검을 해볼 필요는 있다.

또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로 더 이상 시민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억누를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군대에 가기 싫은 욕구가 있다는 건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엄연한 사실인데, 언제까지 이를 억누르기만 할 것인가.

- 여성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누구보다도 군 문제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군대와 징병제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들자면 무엇이 있겠나.

우선, 이 사회가 누가 누구를 보호함으로써 유지된다는 인식이 생겨난다는 점을 들어야겠다. 그러니까 남성이 여성과 아이를 보호한다는 식의 생각이 사회의 구성 논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런 인식들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전형을 만들어낸다.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을 갖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성들은 주변인으로 남는다.

또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이 기업 등 사회 중심부에서 활동하면서 사회 전체를 거의 군대로 만들어놓은 점도 꼽아야겠다. 군대의 상하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남성들끼리 끈끈하게 연결돼 있는 틈에 주변인인 여성이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게 된다.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다 보면, 결국 남성화되어간다. 다른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들은 짧은 기간만 회사에서 일하고 가정에 숨는다.

이 밖에도 군대는 여성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부장적인 가정문화도 군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를 퍼뜨리는 징병제는 여성이 겪고 있는 많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징병제를 극복하는 것은 여성이 처한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인 셈이다. 물론 징병제가 없는 나라라고 여성이 차별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징병제를 넘어서면 우리 여성들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고준성, 미디어다음, 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