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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7 사무원 - 혁명의 시인,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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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사무원’은 목하 수행 중이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의자 고행을 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의자 고행은 힘들고 고달프다. 그러나 그는 견딘다. 힘들고 고달픈 의자 고행에 등이 굽고, 얼굴이 창백해져도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외려 더욱 꿋꿋하게 손익관리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는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한다. 그의 수행은 점점 깊은 경지로 들어선다(김기택, <사무원>).

그러던 어느 날 이 성실한 수행자 앞에 그의 상사가 나타난다. 등이 굽은 사무원은 거북이 같고, 배가 나온 상사는 돼지 같다. 돼지가 거북이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묻는다. 거북이의 등에서 작은 목이 올라와 좌우로 흔들린다. 갑자기 돼지의 목소리가 커진다. 거북이의 목이 도로 등 속으로 들어간다. 거북이의 등은 더 굽어지고, 돼지는 노래를 시작한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거북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싫증난 돼지는 돌아간다. 수행은 일단 계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봄날, 계속해서 수행정진하는 사무원의 앞에 한 젊은이가 다가온다. 젊은이의 구두 소리가 힘차다. 힘찬 구두 소리만큼 힘찬 목소리로 젊은이가 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말한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자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그의 굽은 등을 툭 친다. 그의 등이 바스러진다. 젊은이가 이번엔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그의 목이 떨어진다. 이어 그의 어깨가 떨어지고, 그의 몸이 온통 부서져 내린다. 사무원의 수행이, 아니 삶이 끝난다(김기택, <화석>).

이렇듯 불현듯 끝나버리는 수행자의 삶에 우리는 제법 익숙하다. 오래 전, 1970년 11월. 그때도 우리는 한 수행자의 삶이 끝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때 그 수행자는 노동자였다. 그 역시, 김기택의 ‘사무원’처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의자 고행을 했다. 재단사였던 그의 머리 위엔 언제나 희미한 전등불이 있었고, 전등불 위엔 낮은 천장이 있었으며, 천장 아래 모든 곳엔 자욱한 먼지가 있었다. 그는 그 자욱한 먼지 속에서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됐다. 짐승처럼, 그는 오로지 일하기 위해 먹고, 일하기 위해 자고, 일하기 위해 일했다. 그러다 마침내 분노했고, 13일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는 활활 타오르며 그의 삶과 그의 수행을 끝마쳤다.

모두가 알듯 이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그로 인해 수백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눈을 떴다. 그리고 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그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더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됐다. 원풍모방과 동일방직에서, 반도상사와 방림방적과 YH무역에서 노조건설 투쟁이 잇달았다. 이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노동운동은 꾸준히 무르익어 결국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까지 다다랐다. 씨앗이 숲을 이루었다.

김기택의 ‘사무원’은 바로 이 씨앗에 해당한다. 그는 홀로 묵묵히 수행하다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지는(실직하는) 이 시대 이 사회의 사무원이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자들의 눈을 뜨게 했듯 지금 이 사무원의 실직이 사무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있다. 사무원들이 눈을 떠 바라보는 자신들의 모습은 그저 암담하다. 그들은 세상 그 무엇에도 주인이 아니다. 회사든 사회든 주인은 항상 따로 있고, 그들은 심지어 제 정신의 주인도 아니다. 그들은 가련하게도 제 정신을 텔레비전에 맡겨놓은 지 오래다(김기택, <나는 매일 밤 너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니 아직, 그들이 과연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씨앗이 과연 숲을 이룰 수 있을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희망의 근거는 있다. 금융사무원들로부터 시작된 사무직 노조운동은 사무금융노련, 언론노련, 전교조를 거쳐 바야흐로 공무원노조에 이르고 있다. 눈을 뜬 사무원들이 꾸준히 뭉치고 있다. 그들의 꾸준한 뭉침이 계속되는 한 사무직 노조운동은 끝없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 느리지만 꿋꿋하게 씨앗이 숲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울창한 숲을 꿈꾸며 작은 씨앗을 뿌리는 시인, 그가 바로 김기택이다. 놀랍겠지만, 그는 혁명의 시인이다. 고준성(2002.12.7)

사무원 /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