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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8 뚜렷한 고갱이가 좋은 기사를 만든다

사진 1

위에 있는 인상적인 사진(사진 1)을 찍은 이는 블로거 기자 숲고양이 님이다. 숲고양이 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사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나오는데 맞은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5년 가까이 이 앞을 지나다녔지만, 저런 모양의 계단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깨달았다. 아마 한 번쯤 봤겠지만 무심코 지나쳤겠지. 새삼스레 저 계단을 눈여겨본 것은 두 사람이 계단 아래위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트리밍해보니 현상 릴에 끼우는, 필름의 구멍 뚫린 부분 같다.

숲고양이 님이 ‘트리밍’을 하기 전의 원본 사진(사진 2)은 아래에 있다(숲고양이 님한테 받았다). 아래 사진(사진 2)은 적어도 위 사진(사진 1)보다는 평범해 보인다. 숲고양이 님이 5년 가까이 저 계단 앞을 무심코 지나쳤듯이 이 사진을 보는 사람 역시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일 것이다.

사진 2

그렇다면 이처럼 평범한 사진(사진 2)을 비범한(인상적인) 사진(사진 1)으로 바꾼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숲고양이 님이 스스로 밝혔듯, ‘트리밍’이다. 사진의 ‘고갱이’를 더 뚜렷하게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기. 이는 바로 좋은 기사를 만드는 방법(비법)이기도 하다.

블로거 기자 하정임 님의 기사들을 몇 개 살펴보면, ‘뚜렷한 고갱이(기자들은 대개 ‘야마’라는 은어를 쓴다)가 좋은 기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그동안 하정임 님과 내가 공동작업(?)해 만들어낸 기사들이다.

기사 1-1: 故 전용철·홍덕표 농민 영결식 현장 (←클릭)
기사 1-2: 두 농민 보내는 애절한 춤 (←클릭)

기사 2-1: 2006FIS세계주니어 스노우보드 선수권대회 (←클릭)
기사 2-2: 세계 9위, 한국의 중3 스노보더 (←클릭)

하정임 님과 나는 자주 두 단계에 걸쳐 기사를 만들어냈다. 우선, 하정임 님이 취재한 사실들을 쭉 나열하는 방식으로 초벌 기사를 작성한다. 이후 초벌 기사에서 내가 고갱이를 찾아낸다. 그 뒤 하정임 님이 그 고갱이를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기사의 완성본을 쓴다.

위의 <故 전용철·홍덕표 농민 영결식 현장>(기사 1-1)과 <2006FIS세계주니어 스노우보드 선수권대회>(기사 2-1)는 초벌 기사들이다. 각각의 기사에는 하정임 님이 취재한 사실들이 평면적으로 나열돼 있다(이런 기사들은 대개의 경우 재미없게 읽힌다).

그리고 아래의 <두 농민 보내는 애절한 춤>(기사 1-2)과 <세계 9위, 한국의 중3 스노보더>(기사 2-2)는 기사의 완성본이다. 나는 각각의 초벌 기사에서 ‘애절한 춤을 추는 여인’(사진 3)과 ‘세계대회에서 9위를 차지한 한국의 중3 스노보더’(사진 4)를 고갱이로 골라냈다.

사진 3

사진 4

기사 1-1과 기사 1-2, 그리고 기사 2-1과 기사 2-2의 관계는 숲고양이 님의 사진 2와 사진 1의 관계와 같다. 각각의 쌍에서 후자는 전자를 ‘트리밍’한 것이다. 즉, 전자에서 고갱이를 더욱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낸 것들이다.

기사 1-1과 2-1, 사진 2는 현상(사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평면적이다. 반면 기사 1-2와 2-2, 사진 1은 현상(사실)의 어떤 특정한 부분(고갱이)을 확대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기사 1-2와 2-2, 사진 1이 기사 1-1과 2-1, 사진 2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쯤에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사진의 경우, 건물의 벽면에 불과한 피사체가 ‘트리밍’을 거친 뒤 필름처럼 보이는 것은 ‘예술’일 수 있다. 그러나 기사가 ‘트리밍’을 거친 뒤 독자로 하여금 착각(사진의 착시처럼)을 불러일으킨다면 ‘왜곡’이 아닌가.

타당한 지적이다. 기사를 쓰는 기자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트리밍’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이렇게 덧붙이겠다. ‘트리밍’을 했을 때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건물 벽면을 오려내니 필름처럼 보이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것과 같다. 또 ‘착한’ 기자라면 ‘트리밍’의 결과를 충분히 내다볼 수 있다.

‘뚜렷한 고갱이가 좋은 기사를 만든다’는 것은 차라리 화술에 관한 얘기다. 자신이 말하는 바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이는 군더더기 없이 말한다. 설사 군더더기를 좀 섞더라도 핵심을 뚜렷하게 전달한다. 기자 역시 자신이 취재한 사실의 고갱이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고갱이가 뚜렷한 기사를 쓴다.

물론 취재한 사실들 속에서 고갱이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고갱이를 찾는 일정한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고갱이는 뉴스의 흐름에 따라 매 시간마다 달라진다. 고갱이는 또 장소에 따라, 그리고 (타깃) 독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고갱이는 하나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재를 마친 뒤 취재수첩은 말 그대로 ‘난장’이다. 수첩 안에는 온갖 사실들이 순서도 없이 얽히고설켜 있다. 쪽수 표시도 없이 마구 제본된 책이나 마찬가지다. 기자의 첫 번째 일은 이런 취재수첩에서 고갱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뒤 고갱이를 뚜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차근차근 취재수첩에 쪽수를 매기다 보면 기사는 완성된다. 이게 바로 기자의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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