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잡담의 즐거움 | 40 ARTICLE FOUND

  1. 2008.12.31 '낯설게 하기' 3호점, 그리고 트위터 개설 (1)
  2. 2008.04.04 고종석의 '오늘'을 잇는 멋진 연재 칼럼 (2)
  3. 2008.02.27 고종석의 '사랑의 말', 시작은 입술
  4. 2008.02.24 신경림 시인, '낙타'를 표제시로
  5. 2008.02.22 고종석,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다시 쓴다
  6. 2008.01.23 홋카이도의 설경 (7)
  7. 2008.01.14 Daum 스케줄러, 블로거기자 100분에게 드립니다 (202)
  8. 2008.01.11 미즈노 운동화 받아가세요 ^^ (2)
  9. 2008.01.03 하루 6시간 로그아웃 사수하기
  10. 2008.01.03 미디어다음에서 인재를 모십니다 (4)
  11. 2007.12.27 인터넷? 블로그? 인생은 그런 데 없다 (19)
  12. 2007.11.26 하정임 님의 쾌유를 빕니다 (2)
  13. 2007.06.28 짧은 휴가 뒤 업무 복귀
  14. 2007.05.28 다시 블로깅 시작합니다 (2)
  15. 2007.04.19 '미디어2.0'의 커버모델에 관해 (13)
  16. 2007.04.15 나, 블로거뉴스 헤드라인에 뜨다 (6)
  17. 2007.04.14 블로거뉴스 편집하다 만난 '밤 벚꽃'
  18. 2007.04.08 사랑 2 (3)
  19. 2007.04.03 애드클릭스 달았습니다 (8)
  20. 2007.03.27 블로그 '미디어2.0'의 성장곡선 (2)
  21. 2007.03.26 미투데이 초대장 드립니다 (13)
  22. 2007.03.23 "기관차를 본 최초의 역마차 마부는.." (8)
  23. 2007.03.19 생각해보니, 특이한 내 이력들 (9)
  24. 2007.03.16 궁금해서 플레이톡을 만들다
  25. 2007.03.11 놀람 없는 납득 (1)
  26. 2007.03.10 스킨 변경
  27. 2007.03.06 다시 블로깅 열심히 하겠습니다 (4)
  28. 2007.03.02 길, 그리고 광야 (4)
  29. 2007.02.27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6)
  30. 2007.02.23 축구 좋아하시는 블로거기자는.. (6)


2008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한 일 2가지. '낯설게 하기' 3호점, 그리고 트위터 개설. 새해엔(아마도 올해보다 더 바쁜 한 해가 될 듯하지만) 온라인에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볼까 한다.

My 트위터: http://twitter.com/joonseong
'낯설게 하기' 3호점: http://peony.textcube.com/

혹시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장을 보호하라>라는 책을 읽어보신 분 있으세요? 만약 이 책을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밤을 새우며 함께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습니다. 정윤수 님의 글맛을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엔 결코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축구장을 보호하라(정윤수 저, 사회평론, 2002)

문화평론가 정윤수 님께서 블로깅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둥지를 트셨네요. 블로그 이름은 정윤수의 BOOK...ing. 하루 하나씩 역사와 문학을 버무린 글을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하나씩 멋진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잘 알지만, 정윤수 님의 글맛을 아는 독자로서 무리한 부탁을 드려봅니다. 정윤수 님께서 하루도 블로깅을 거르지 않기를 희망해 봅니다. ^^ 매일 고종석의 칼럼 <오늘> 읽으며 느끼던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윤수의 BOOK...ing 바로가기


50세에 다시 쓰는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입술에서 시작됐다. 역시 며칠 지나서야 읽었다.

관능 내뿜는 사랑의 몸짓이 시작되는 곳 / 고종석

“몸: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볼 수라도 있을까?”, “살품: 옷과 가슴 사이에 난 틈. 텅 빔. 관능의 늪. 관음(觀淫)의 표적. 관음(觀音)의 적(敵).”이라고 쓸 땐 참 간결했는데, 이번엔 좀 길다. 신문 지면을 다 채워야 하는 탓이겠지. 매주 월요일에 실리나 보다. 다음 주엔 지면에서 봐야겠다.


비행기 안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알게 된 것 하나 더. 신경림 시인이 <낙타>를 새 시집의 표제시로 골랐다는 사실(하긴 출판사 편집자가 골랐을 수도 있겠다). 4년 전 가을(그러니까 ‘낭인’이었을 때), 이 시를 읽고는 수첩에 옮겨 적었었는데.

관련 기사: 삶과 죽음 분별 부질없는 ‘황혼의 노래’ / 한겨레

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며칠 지난 기사를 오늘에야 읽었다.

우리시대 美文家, 낱말에 배인 분홍빛 관능을 추출하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문장가 고종석 씨가 30대 후반에 썼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50세에 다시 쓴다는 소식. 가슴 설렌다. 다시 ‘고종석을 읽는 밤’을 기대한다.

고종석을 읽는 밤 / 낯설게 하기


미디어다음 동료들과 함께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 눈 내린 홋카이도.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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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디어2.0>에 “OOO 드립니다. 받아가세요” 하는 내용의 포스트를 자주 올리네요.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

Daum 2008년 스케줄러(다이어리와 탁상달력)를 블로거기자(블로거뉴스에 가입한 블로거)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이 포스트에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비공개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선착순 100분에게 스케줄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닉네임 / 블로그 URL / 스케줄러 받을 주소(우편번호, 수취인 성명 포함)
peony / http://media20.tistory.com / 우 OOO-OOO, 제주시 OO동 OOO-OO, 홍길동

※ 해외에 계신 블로거기자 분들은, 죄송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제외하겠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임.

비밀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 블로거기자가 아닌 분과 본명을 적지 않으신 분들을 제외한 분들에게 Daum 스케줄러를 발송해드릴 예정입니다.


미디어다음을 둘러보다 보니, Daum 스포츠와 SBS 스포츠가 함께하는 이벤트가 있어서 안내해드립니다. 상품(미즈노 운동화)이 워낙 많아서(155개), 응모하기만 하면 상품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고급운동화 필요하신 분들 동영상UCC 하나 만들어보세요.

‘2008 북경’ 대표팀 응원 UCC 축제


오늘자(3일) 한겨레에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하루 6시간 로그아웃 사수하기. 그런데 새해 두 번째 근무일인 오늘, 지금(10시) 퇴근합니다. ^^; 하루 6시간 로그아웃, 정말 쉽지 않은 목표인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꿈을 현실로, 2008년 새해를 맞는 50인의 50가지 선택 / 한겨레

*

하루 6시간 ‘로그아웃’ 사수

“인생은 ‘로그아웃’에 있다.” 2008년 내가 붙들고 있는 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을 로그인 상태에서 보냈으니 이런 말에 ‘꽂힐’ 만도 하다. 새해에 나는 로그아웃해서 인생을 되찾을 테다.

실천방침은 이렇다. 하루 6시간 로그아웃 사수하기. 물론 깨어있으면서 로그아웃해 있는 시간이 6시간이어야 한다. 주말엔 하루 12시간 로그아웃. 즉, 주중 30시간, 주말 24시간. 나는 일주일에 54시간씩 2007년엔 없었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럼 뭘 할까. 온라인에 있는 지식이 아닌 오프라인에 있는 지식을 습득하겠다. 블로그에 있는 이국 풍경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제주의 오름을 보겠다. 그리고 포털에서 댓글을 읽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수다를 듣겠다. 멋지지 않은가. 2008년, 벌써 설렌다.


미디어다음 신입·경력 채용 공지 안내해드립니다. 미디어다음에 관심 있는 분들 많이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블로거뉴스, 아고라, 텔레비존, 세계엔 등 미디어다음의 UCC 서비스에 관심 많은 분들 환영합니다. ^^; 아래는 Daum의 채용페이지 URL과 관련 내용입니다.

Daum Recruit: http://recruit.daum.net/DaumRecruit/recruit_main.jsp

Service Planning > 뉴스편집.기획
뉴스편집.기획(신입/경력)  2008/01/03~충원시까지 
 
◆ 채용인원
- 정규직 3명

◆ 업무내용
- 미디어다음 뉴스편집.기획

◆ 지원자격
- 온라인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신입 지원 가능)
- 시사이슈에 밝고 인터넷 트렌드에 민감한 분
- 포탈 뉴스편집, 언론사 취재.편집 등 온라인 미디어 경험자 우대
- 제주 근무 가능한 분


모 신문에서 새해 다짐을 적어달라는 청탁을 해와서 쓴 글. 새해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살 참이다. 여러분도 오프라인에서 사시길.

*

인생은 ‘로그아웃’에 있다

포털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는 인터넷 그중에서도 특히 블로그에서만 할 수 있는 어떤 ‘판타스틱’한 새해 목표를 독자들에게 제시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새해 다짐은 좀 다르다. “인생은 ‘로그아웃’에 있다.” 2008년 나는 이 말을 잊지 않고 살 예정이다.

2007년 나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에 ‘로그인’ 상태였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엔 항상 ‘로그인’ 해 있었으니, 내 업무 성과는 남달리 뛰어났을까? 천만에.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 성과와 ‘로그인’ 시간은 별 상관이 없었다.

다만 나는 ‘로그인’ 시간을 관리하지 못해 내 인생을 갉아먹었을 뿐이다. 2008년 나는 ‘로그인’ 총량제를 실시해 내 소중한 ‘로그아웃’ 시간과 인생을 지켜낼 생각이다. 여러분도 ‘로그아웃’을 지켜내시라. 인터넷? 블로그? 인생은 그런 데 없다.


하정임 님의 쾌유를 빕니다. 아니, 그보다는 오진이기를 바랍니다.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하정임 님, 힘내세요.

저 암이래요 / 하정임


짧은 휴가를 보내고, 곧(28일) 업무에 복귀합니다. <미디어2.0>에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방명록에 블로거 코난 님의 안부인사가 있네요. 블로거뉴스를 꾸준히 봐오신 분이라면, 코난 님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래는 코난 님의 삶을 사진으로 정리한 포스트입니다. 바쁘신가요? 바쁘셔도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peony

사진으로 본 나의 인생 스토리 / 코난


그간 <미디어2.0>을 거의 폐가처럼 방치해뒀네요. 블로거뉴스2.0 개편 뒤에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블로그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부터는 짧지만 알찬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중에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즐거웠습니다.

쉬는 중에는 블로거 dall-lee(이용한 시인) 님의 신간 <은밀한 여행>을 들고는 가벼운 여행을 다녀왔고, 이창동 감독의 신작 <밀양>을 봤습니다. 그리고 작가 김훈의 새 장편 <남한산성>을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삶에 대한 열망이 가슴속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

이번 주엔 블로거뉴스2.0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일정들을 세팅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동영상기자단 관련해서 몇 가지 결정할 것들이 있고, 오픈에디터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지할 것은 공지하고, 관계되시는 분들에게 연락드리겠습니다. 블로거뉴스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peony


몽구

<미디어2.0>의 첫 커버모델, 몽구

잡지를 보면 매달 커버모델이 있지요? 또 탱굴 님이 운영하는 <탱굴닷컴>에도 커버모델이 있습니다. 그간 보아온 바에 따르면, <탱굴닷컴>에선 주로 탱굴 님이 그때그때 주목하고 있는 ‘예쁜 여자’ 분들이 커버모델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

블로그 <미디어2.0>에서도 (매달) 커버모델을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미디어2.0>이 뽑는 커버모델은 ‘예쁜 여자’가 아니라 우리가(그러니까 블로거뉴스 편집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파워블로거’입니다(물론, 미디어다음 블로거기자들만이 대상은 아닙니다).

<미디어2.0>이 선정한 첫 커버모델은 ‘취재하는 블로거’ 중 가장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는 몽구 님입니다. 몽구 님의 활약에 대해서는 예전 포스트 <네이버에 이동진이 있다면 Daum엔 '몽구'가 있다>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미디어2.0>이 왜 몽구 님을 첫 커버모델로 뽑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관련 글: 네이버에 이동진이 있다면 Daum엔 '몽구'가 있다 / peony

매달(이 될지 매주가 될지, 혹은 격월이 될지 모르겠지만) <미디어2.0>의 커버모델을 선정하는 순간이 <미디어2.0>의 필자와 독자들에게 두루 가슴 설레는 때가 되기를 바랍니다. 블로고스피어를 뉴스(이슈) 생산의 진원지로 발전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블로거에게 아낌없이 ‘어텐션’(attention)을 보내주는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peony


어제(14일)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이슈트랙백은 MoveOn21 님이 제안한 <당신은 왜 ‘야근’을 하십니까>. 덩달아 나도(내 뒤통수도) 헤드라인에 올랐다. ^^; 초과근무가 일상인 내 동료들과 이 기쁨을 나눈다. ㅡㅜ

[이슈트랙백] 당신은 왜 '야근'을 하십니까 / MoveOn21

Daum 블로거뉴스

14일 Daum 블로거뉴스 헤드라인 <당신은 왜 '야근'을 하십니까>


블로거뉴스를 편집하다 보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모습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나는 갈 수 없는 곳들의 절경을 한자리에 앉아 볼 수 있으니 좋기도 하지만, 다른 블로거들은 저런 절경을 만끽할 때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오늘 만난 아름다운 모습은  『太陽』님이 보내준 ‘밤 벚꽃’(『太陽』님은 고유석 님과 함께 DSLR 입문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매력적인 ‘밤 벚꽃’ 사진(아래)도 좋았지만, 내가 한때 폭 빠졌던 시 <밤 벚꽃>(이면우 시인)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해 더욱 좋았다. 오늘 저녁엔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펴봐야겠다.

'밤 벚꽃' 매력적으로 찍는 방법 / 『太陽』
관련 글: 블로거기자들, 책 출간 '러시'

밤 벚꽃 / 이면우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천년을 기다려 오소소 소름 돋는 바로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안도록
천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밤 벚꽃

밤 벚꽃과 가로등 ⓒ『太陽』


사랑 2

잡담의 즐거움 2007.04.08 15:12

윤대녕의 '은항아리 안'은 온갖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곳에는 얼음장 아래를 헤엄치는 잉어가 있고, 빈 수레를 끄는 염소, 부리로 모이를 뒤지는 닭, 빈틈없이 날아드는 하루살이 떼가 있다. 또 환한 단풍과 속이 꽉 여문 배추, 햇빛에 젖은 거미줄이 있다. 이 아늑하고 아름다운 은항아리 계곡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여인은 그믐의 몸이다. 더 이상 차오를 수 없었던 보름달이 제 한 구석을 허물기 시작해 바야흐로 그믐이 되었다. 여인은 피로하다. 하지만 여인은 남자를 위해 생채와 두부조림과 멸치볶음과 김과 콩나물국과 된장찌개를 요리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인이 시키는 대로 콩나물 대가리의 껍질을 벗겨 내고, 두부와 호박 따위를 사러 채소 가게에 다녀온다. 그 사이사이 여인의 요리를 참견한다. 남자는 한때 캄캄한 방에 혼자 앉아 솥바닥을 긁어 밥을 먹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때 그는 사막으로, 또 세상의 끝으로 정처 없이 떠나야만 했는데 남자는 이제 여인으로 인해 떠나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한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둘의 사랑엔 그리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여인은 떠나야 한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의 딱 반만큼 그들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여인은 묻는다. 다만 조금 긴 하루를 살다 가는 우리는 왜 하루의 반나절도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없을까요. 여인이 떠나갈 때 하늘의 달은 사라지고, 차창 가에 앉아 있는 여인의 옆얼굴은 따박따박 조금씩 깎여 나간다. 이윽고 항아리 안에 숨죽이고 있던 낮의 짐승들이 하나둘 밖으로 기어 나가고, 은항아리 안엔 명주빛 거미줄만 남는다. 텅 빈다.

올해(2002년) 76세를 맞이했을 하경 씨는 이 텅 빈 은항아리의 슬픔을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는 2000년 8월 15일, 50년 전 헤어진 남쪽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평양에서 서울로 왔었다. 함께 북에서 건너온 김희영(74) 씨와 리복연(75) 씨가 각기 자신들의 아내를 만날 때 하경 씨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하경 씨의 아내 김옥진(80) 씨가 재혼에 대한 죄책감으로 상봉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날, 아내 김옥진 씨가 겨우 용기를 내 상봉장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인원제한에 걸려 하경 씨는 김옥진 씨를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날, 마침내 김옥진 씨를 만났을 때 하경 씨는 울먹이며 말한다. 마누라, 왜 이제야 온 거야. 미안해서 그랬지요, 이제 왔잖아요. 늦게라도 와주니 고마워. ……. 미안해, 미안해. 이날, 하경 씨와 김옥진 씨가 함께한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다만 조금 긴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인 이 둘은 하루의 반의반의 반나절도 사랑하는 이의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하경 씨가 윤대녕의 '은항아리 안에' 들어온다면, 그는 아마 '낫을 든 노인'의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은항아리 안의 이 노인은 한 손에 낫을 들고, 꼼짝도 않고 서서 멀리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노인은 은항아리의 남자와 여인이 다가가도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노인은 상실한 자가 분명하다. 그는 옛적 어느 시절 사랑을 잃었거나 꿈을 잃었거나 삶의 중요한 의미를 상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낫을 드는 일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어느 날 문득 상실한 것들의 환영을 보았을 것이다. 삶은 바로 거기서 정지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사랑하는 이들을 굳이 갈라놓아야만 하는 이념은 위선이다. 자유를 참칭하는 자들의 자유, 평등을 참칭하는 자들의 평등은 이 땅의 '낫을 든 노인'들을 결코 위로할 수 없다. 배고픈 자에게 필요한 것이 그저 밥이듯 이미 그믐의 몸인 '낫을 든 노인'들에겐 이념도, 체제도, 국가도 아닌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가 필요할 뿐이다. 이 절실한 요구 위에 다시 또 거창한 허위가 올라설 때 한반도라는 은항아리엔 필경 캄캄한 밤이 찾아올 것이다. 하늘의 달이 사라지고, 은항아리 안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꾸물꾸물 줄지어 기어 나가고, 하루살이 떼까지 죄 밤하늘로 날아가고, 오직 거미줄만 남을 것이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거미줄만 홀로 은항아리의 밤을 지새울 것이다. 고준성(2002.4.21)


보시면 아시겠지만, 블로그 '미디어2.0'에 Daum 애드클릭스 광고를 달았습니다. 블로그에서 광고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앞으로 '블로그 산업'을 일구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글 애드센스든 Daum 애드클릭스든 블로그 기반 광고서비스들이 더 크게 파이를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다른 블로거(Daum 블로거기자 포함) 분들도 애드클릭스 많이 다세요. ^^

관련 글: 애드클릭스 사용, 주저하지 마세요


“블로그 히트 수 7만 회를 매우 빠르게 달성했던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잠깐 짬을 내서 블로그 미디어2.0의 성장곡선을 그려봤다. 이 블로그는 지난해 11월 16일부터 히트 수를 세기 시작해 4개월여 만에 히트 수 8만 회를 돌파했고, 지금껏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하긴 아직 그럴 듯한 블로그 콘텐츠 배포처가 나타나기 전이니, 아래 그림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다.

미디어2.0의 성장곡선

미디어2.0의 일일 히트 수 / 2006.11.16 ~ 2007.03.27


미투데이 초대장 드리겠습니다. 4장입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분에게 우선 드리겠습니다. ▲미디어다음 블로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분 ▲저와 오프라인에서 소통해본 분 ▲저와 온라인에서 소통해본 분 순입니다. ^^; 이름, 이메일주소, 오픈아이디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글은 peony님의 미투데이 2007년 3월 22일 내용입니다.


친구 한글로의 포스트 덕분에 내가 고등학교 때 모교의 배지(badge)를 디자인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는 내가 한때 디자인(그러니까, 미술!)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근 10여 년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부터 나는 뭔가 하나씩 특이한 일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쑥스럽지만, 몇 개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중학교 때는 교회에서 율동(그러니까, 무용!)을 했다. - 나는 교회의 유일한 남성 율동단원이었다(참고: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대학교 때는 록밴드(그러니까, 음악!)를 했다. - 공대를 다녔던 나는 록음악에 무척 심취해 3학년 때쯤 ‘가난한 뮤지션’으로 살아갈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음악 실력이 모자라서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대학원 때는 소설 창작(그러니까, 문학!)을 했다. - 지도교수가 미국으로 휴가를 가 있는 사이 몰래 써본 소설로 교내문학상을 덜컥 받았다. 이후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그 몇 년 뒤, 글을 쓰며 살겠다고(ㅡㅜ), 결국 학교를 떠났다(그래서 지금 이렇게 됐다).

막 군에 입대한 뒤에는 배를 탔다(그러니까, 항해!). - 공군에 가려다 만일의 사태(그러니까, 떨어지는 사태)를 대비해 해군에 가고, 교관에 지원하려다 다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항해병과에 지원하는 바람에 결국 1년간 바다 위에 떠 있었다(뭐, 값진 경험이었다).

이 밖에 프로그래머로 1년간 인터넷쇼핑몰 등을 만든 경험이, 사회부 기자가 돼서 밤낮없이 경찰서 ‘마와리’를 돈 경험이, 월급 안 주는 언론사를 뛰쳐나와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먹고살 길이 막막해 학원강사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건 그냥 각설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다보니, 돌이켜보건대, 인생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서열을 중시해 그 ‘바닥’에 언제 들어왔는지가 경력과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나는 아직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아야 할까. 나는 선뜻 ‘그러자’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냥 한국을 떠나고 말지.’ 이게 지금 내 생각이다. 아니면, 한국 안에서라도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이들이 바글바글한 곳을 찾아내든가(또는 만들든가).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플레이톡에 내 공간을 만들었다. 미투데이는 초대장이 없고(있는 분 좀 주세요~). '바쁜 블로거'에게 유용한 툴이 될지, '바쁜 블로거'의 자투리 시간마저 빼앗는 툴이 될지. 플레이톡(또는 미투데이)에서 블로거뉴스에서 생기는 일들을 실시간 중계(?) 해볼까 생각 중. 그런데 싸이에서 진지한 글을 쓰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

peony의 플레이톡: http://playtalk.net/media20

B아파트 103동 801호에는 나와 내 가족이 살고 있다. 우리가 주인은 아니다. 주인은 K시 C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모 씨다. 하지만 이모 씨도 아파트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B아파트 단지가 차지하고 있는 총 19873.5㎡의 땅 중 그의 소유분은 198,735,000분의 358,437일 뿐이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다른 호를 소유하고 있는 김모 씨, 박모 씨, 최모 씨 등과 함께 어떤 뚜렷한 구획 없이 땅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공동소유의 땅 위에 이모 씨의 집 B아파트 103동 801호는 새둥지처럼 떠 있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은 그 둥지를 빌려 살며 하루하루 짹짹거리고 있다.

한데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땅에 주인이 있다니. 돈으로 땅을 살 수 있다니. 아파트야 인공의 산물이니 그렇다 해도 땅은 애초 누구의 산물이었기에 돈으로 사고팔 수 있었던 걸까. 땅은, 땅 위의 나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 무식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일을 묻는 것은 어린아이들만의 특권이지 서른 살 먹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어른의 할 일은 외려 아이들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으로 땅을 사고 팔 수 있는 이유를 가장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일인데 그게 어렵다면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더 ‘교육적인’ 곳으로 돌리는 것도 좋다. 바쁜 아이들이 그런 망상이나 하는 것은 소모적이며, 그들의 아름다운 자본주의적 미래를 위해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듯 특별한 배려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난다. 아이들은 모든 인식발달의 과정에서 놀람의 단계를 건너뛴 채 납득의 단계에 안착한다. 아이들은 돈으로 땅을 사고판다는 사실, 세상에 공짜는 공기와 바람과 햇빛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놀랍다고 여기는 대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2001년 11월, 19세의 청소년들이 우는 배경에도 바로 이것이 있다. 이미 놀람이라는 기능이 퇴화한 이들 대부분은 세상의 모든 19세들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서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별반 놀라지 않았었다. 단지 조금 불평했을 뿐 이들의 관심은 도리어 수능이라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그리하여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더 많은 땅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어려운 수능에 울고불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놀람 없이 납득했고 온몸을 던져 그것과 하나가 됐던 이들에게 어려운 수능은 분명 실존의 위기였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들을 길러낸 어른들의 세상은 더 참담하다. 그리고 그들의 놀람 없는 납득은 그 파급효과가 더욱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가령 그들은 죽음에 대한 죽음의 보복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는다. 당연하다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암기력이 좀 뛰어날 뿐인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죽음을 언도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는다. 피해자의 억울함, 그리고 법철학 운운하며 납득한다. 여기서 죽여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무식한 소리일 뿐이다. 그러니 더욱 거침없이 놀람 없는 납득의 파급효과는 계속된다. 때로는 죽음 없이도 죽음이 선고된다. 이유는 ‘죄수’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저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때로는 테러에 전쟁으로 응답한다. 전쟁은 테러와 다른 고귀한 것인 줄 안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면, 테러도 ‘정치의 연장’이다. 아니라면 둘 다 아니며, 전쟁은 그저 대규모의 테러일 뿐이다. 놀람 없이 납득했던 이들은 결코 이 상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B아파트 103동 801호. 막 두 돌을 넘긴 내 아이는 잠들어 있다. 나는 저 아이의 성장이 두렵다. 미래의 어느 날 아이가 놀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깝고, 나중에 다시 그것을 당연하다 여길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그리고 혹시 놀람, 납득의 순이 아닌 납득, 놀람의 순으로 세상을 인식하거나 납득, 놀람의 순에서 끝끝내 납득에 머무를 경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답답하다. 차라리 나는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저 아이를 놀라게 놔두는 것은 정녕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일까. 상념은 끝이 없고, 밤은 적막하다. 아파트의 불은 죄다 꺼져있다. 고준성(2001.11.19)


블로그의 글씨가 너무 작다는 사랑초 님의 말씀에 따라 블로그 스킨을 변경했습니다. 폰트도 조금 더 크고, 행간도 넓게 잡아놓아 시원스러운 느낌이 나는 스킨인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좋은 스킨 제작해서 배포해주신 DAISY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일주일 넘게 블로그에 변변한 포스팅을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업무상 일정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래서 블로거뉴스에서 벌어졌던 여러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들을 여러분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또 차곡차곡 기록해두지도 못했습니다. 아쉽네요.

이번 주부터는 다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블로깅을 착실하게(?) 해나가겠습니다(저는 지금 블로거뉴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곳에 잘 기록해두는 게 저와 블로거기자들은 물론, 블로그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서 여러분들(블로거기자들을 비롯한 모든 블로거 분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을 기획 중이라는 것도 밝힙니다. 굵직한 프로젝트와 계획이 줄잡아 네댓 개는 되는 상황입니다. 행복한 일이겠죠? ^^; 힘들긴 하지만, 보람찬 하루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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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태의 논어 해석은 차분하지만 도발적이다. 그것은 그가 오랜 세월 동안 공자 위에 내려앉아 있던 모든 공자가 아닌 것들을 벗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과 그 긴 시간이 만든 아득한 거리를 이수태는 가볍게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위정(爲政)에 나오는 단편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에 대한 이수태의 해석은 날것 그대로의 공자를 독해해내는 그의 차별성을 잘 보여준다. 이 단편은 일반적으로 ‘먼저 행하고 나서 그 다음에 그에 관해 말해야 한다’, 즉 ‘말보다 실천이 먼저여야 한다’ 정도의 평범한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 해석은 ‘從之’의 의미를 얼버무리고 있다. 또한 공자와 그의 제자 자공(子貢)에 대한 깊은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이 단편에 정확히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수태가 강조하듯, 공자의 모든 말이 대화하는 상대방의 상태와 철저히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공자의 말은 상대방에 대한 대응이며 처방이다. 이 단편에서도 공자는 그의 제자 자공에 대해 대응하고 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공자는 무엇에든 쉽게 감탄하고 무엇이든 쉽게 경배하는 자공에게 ‘군자는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나서 그 말을 좇아야(추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從之’의 의미(그것을 좇다)는 그저 단순하고 명쾌하다.

따라서 위정(爲政)의 이 단편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군자는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나서 그 말을 좇아야 한다)’는 말과 실천의 문제에 관한 공자의 권유라기보다 이데올로기든 종교든 진리라 불리는 그 무엇이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공자의 경고에 해당한다. 공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도그마에 갇힌 인간의 비극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공자의 이 성찰은 대체로 옳은 듯 느껴진다. 우선 지성선사(至聖先師)니 문선왕(文宣王)이니 하는 이름으로 그 자신이 신이 되어버린 공자의 처지가 이 성찰의 옳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 하나로 지구 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거대한 나라의 정치인들이 이 성찰의 옳음을 증명한다. 쉽게 감탄하고 쉽게 경배하는 자들이 만든 이 도그마와 도그마의 황폐한 세상이 이 성찰의 옳음을 증명한다.

한데, 차분히 생각해보면, 기실 이 도그마의 세상 속에서 싸우고 있는 전사(戰士)들의 착각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다만 ‘길’을 보되 그 ‘길’을 품고 있는 애초의 ‘광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길이 처음부터 길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들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길은 그저 누군가의 발자국 위에 다시 누군가의 발자국이 더해 만들어진 발자국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해서 길은 태생적으로 드넓은 광야 위에 새겨진 한 줄 흉터라는 사실을 그들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길 속에 갇혀 광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수태가 공자를 만나고 공자를 읽는 방식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길이 광야의 작은 일부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편협한 전사들에게 이수태의 공자 독법은 유익하다. 비록 그가 공자라는 광야를 넘어서는 또 다른 광야를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어쨌든 공자라는 광야에 2천5백 년 동안 새겨진 완강한 길 위에서 자유롭다. 맹자도, 주자도, 다산도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는 공자라는 광야 위에 새겨진 그 무수한 길들, 즉 공자에 대한 기존의 모든 해석들을 배반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이수태의 이런 도발이 이 시대의 새로운 보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든 보편은 폭력적이지만, 이 경우만은 예외다. 이 보편은 세상의 모든 보편들을 의심하는 보편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보편은 어떠한 길 속에도 갇혀있기를 거부하는 보편으로, 우리로 하여금 길을 벗어나 광야를 달릴 수 있게 하는 보편이다. 길을 벗어나 광야를 달릴 수 있게 하듯 이 보편은 언젠가 다시 광야를 넘어서는 그 무엇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도그마에 사로잡힌 편협한 전사가 되진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의심 많은 자들, 그리하여 자기 자신마저 신뢰하지 못하는 가엾은 자들을 외려 신뢰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혹시’, ‘행여’, ‘아마’ 등등 모든 주저주저하는 말들을 나는 사랑한다. 이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이 말 속에는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나서 그 말을 좇아야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는 공자의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 말을 좇기 전에 그 말을 행해’ 가르침과 삶의 일체화를 시도하는 그들은 이 작업의 큰 어려움 앞에서 늘 주저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기에, 쉽게 감탄하고 쉽게 경배해 온갖 확신으로 가득한 이들보다 더 가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더 도발적이다. 세상은 아마도 이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고준성(20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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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읽을 때 나의 내면은 시와 더불어 흔들린다. 마치 두 개의 소리굽쇠가 만나 서로를 흔들듯 시는 나를 흔들고, 나는 시를 흔든다. 말하자면 시와 나는 공명(共鳴)한다.

그렇게 공명하며, 나는 시인의 세계를 만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그려진 시인의 세계는 어둡고 쓸쓸하다. 그곳엔 초라한 식당과 붉은 유곽 따위가 있을 뿐이다. 식욕과 성욕에 허기진 사내들이 그 식당과 유곽에 드나들고, 이런저런 노동에 지친 여인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시인은, 그리고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기는 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인과 시인의 가족은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아침녘 밥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으로 술집으로 탈출하듯 뿔뿔이 흩어져야만 한다. 뚜렷이 갈 곳이 없는, 좀 거칠게 말해, 대학씩이나 나와 놀고먹는 시인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귀가한다. 시간이 아프게 흐르고, 시인은 마주선 삶에 대해 점점 주눅이 들어간다. 비슷한 삶을 겪어내고 있는 시인의 여동생들 ― 아버지와 오빠의 등 뒤에서 스타킹을 걷어 올리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시인의 여동생들은 하릴없이 눈물이 많아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종류의 삶을 알고 있다. 나와 나의 가족은 오랜 시간 ‘방 한 칸’에서 살았다. 때로 그 ‘방 한 칸’은 건물 주차장을 개조한 과일가게의 곁방이었고, 때로 열 평이 채 안 되는 슈퍼마켓의 다락방이었다. 우리는 생쥐가 구멍을 드나들듯 과일가게의 곁방을 드나들었고, 다람쥐가 나무를 타듯 슈퍼마켓의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방은 둘 다 좁고 어두웠다. 특히 슈퍼마켓의 다락방은 천장마저 낮았다. 우리는 뒤뚱뒤뚱한 오리걸음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느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데 이런 느리고 조심스러운 ‘방 한 칸’의 삶엔 어느 날 불쑥 틈입해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경우 그것은 쥐 한 마리였다. 쥐는, 보름 전쯤 시인의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식구들의 가슴 위를 돌아다녔다. 식구들이 모두 깼고, 쥐를 잡기 위해 뛰었다.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겼다. 막내 여동생은 밖에 나가 혼자 울다 들어왔다. 울며, 시인의 여동생은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렸던 가난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가난은 이렇듯 가난한 자에게 그들의 가난을 알릴 때 결코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송곳처럼 단번에 가난한 자의 가슴을 찌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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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집을 덮고,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이 ‘방 한 칸’의 삶들, 이 가난의 풍경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발전’과 더불어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뭔가 숨기고 있다. 우리는 비추어야 할 것을 비추지 않고, 돌보아야 할 것을 돌보지 않으며 함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아득한 저 옛날 동족을 잡아먹던 식인종들의 모습처럼 무모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여 나는 귀양 떠나는 시인의 심정을 이해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시인은 마침내 스스로 귀양을 떠난다.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 넘어 멀리, 한없이 멀리 떠난다. 더 이상 비추어지지 않고, 돌보아지지 않는 자의 마지막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뛰는 사람보다 더딘 기차를 타고, 길 끝이 무덤인 철로를 달려 시인이 가게 될 곳은 어디인가. 시인은 서해를 넘어, 중국을 넘어, 인도를 넘어, 유럽과 태평양을 넘어, 다시 속초로, 다시 세상의 끝으로, 다시 세상의 끝에 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으로 돌아온다. 시인이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그곳, 눈물겨운 그곳으로.

나는, 눈물마저 얼어버린 이 계절에, 당신에게 김중식의 시를 권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다. 고준성(2002.11.2)

*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돌아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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