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한글로의 포스트 덕분에 내가 고등학교 때 모교의 배지(badge)를 디자인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는 내가 한때 디자인(그러니까, 미술!)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근 10여 년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부터 나는 뭔가 하나씩 특이한 일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쑥스럽지만, 몇 개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중학교 때는 교회에서 율동(그러니까, 무용!)을 했다. - 나는 교회의 유일한 남성 율동단원이었다(참고: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대학교 때는 록밴드(그러니까, 음악!)를 했다. - 공대를 다녔던 나는 록음악에 무척 심취해 3학년 때쯤 ‘가난한 뮤지션’으로 살아갈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음악 실력이 모자라서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대학원 때는 소설 창작(그러니까, 문학!)을 했다. - 지도교수가 미국으로 휴가를 가 있는 사이 몰래 써본 소설로 교내문학상을 덜컥 받았다. 이후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그 몇 년 뒤, 글을 쓰며 살겠다고(ㅡㅜ), 결국 학교를 떠났다(그래서 지금 이렇게 됐다).

막 군에 입대한 뒤에는 배를 탔다(그러니까, 항해!). - 공군에 가려다 만일의 사태(그러니까, 떨어지는 사태)를 대비해 해군에 가고, 교관에 지원하려다 다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항해병과에 지원하는 바람에 결국 1년간 바다 위에 떠 있었다(뭐, 값진 경험이었다).

이 밖에 프로그래머로 1년간 인터넷쇼핑몰 등을 만든 경험이, 사회부 기자가 돼서 밤낮없이 경찰서 ‘마와리’를 돈 경험이, 월급 안 주는 언론사를 뛰쳐나와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먹고살 길이 막막해 학원강사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건 그냥 각설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다보니, 돌이켜보건대, 인생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서열을 중시해 그 ‘바닥’에 언제 들어왔는지가 경력과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나는 아직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아야 할까. 나는 선뜻 ‘그러자’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냥 한국을 떠나고 말지.’ 이게 지금 내 생각이다. 아니면, 한국 안에서라도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이들이 바글바글한 곳을 찾아내든가(또는 만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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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mawa 2007.03.22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멋진 인생이네요.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군요,
    아, 근데, 참 아쉽네요..인물이 쪼매만 더 받쳐줬어도 지금 방송에서 멀티스타셨을 것을!! ㅋㄷㅋㄷ..
    연애하기에 딱 좋은 상대시군요..뭐, 결혼까지도..ㅎㅎ,,안타깝습니다. (ㅋ허거덕?)

    • BlogIcon peony 2007.03.22 2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달려는 사이에 내용이 바뀌었네요. ^^ 인물 안 받쳐준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뭐,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더군요. ㅎㅎ

  2. 2007.03.23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권기현 2007.04.04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선생님 이력도 화려하다기보다는 도전의 연속이군요!!!!!
    도전은 항상 새로운 경험과 흥분을 만들기도 하지요.....ㅋ
    인생의 유한한 시간자원으로 살아가는 생각하는 미물에 불과한데
    정선생님의 끝없는 도전은 계속되기를 빌겠습니다.
    제가 직장생활 시작할때 존경하는 상사님이 해주신말
    '모든일에 초심을 얼마까지 지속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불현듯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정광현선생님 늘 활기차게 화이팅~~~~~~~~~~~~

  4. 미-----루 2007.04.08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 인생 두고 본다면 한 곳에 붙박이처럼 붙어서 연륜과 경력을 밥삼아 살아온 사람보다 훨씬 낡지 ㅇ낳게 살 테니 결국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싶네요. 미디어2.0이 훗날 언론권력으로 발돋움할지도 모르지요.

    • BlogIcon peony 2007.04.09 0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그재그로 살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볼 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고 있긴 합니다(믿거나 말거나). 격려 감사하고요. 가끔 한발 물러서서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나 살펴보겠습니다.

  5. BlogIcon 모과 2008.08.1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일을 했던 그 당시 그것이 하고 싶었고 ,또 시행 했다면 행복한 거지요.
    세상에 자기가 잘 할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방황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태어 나서 한 곳에 쭉 살고 , 학교에만 다니다가 한 직업만을 가지고 살다 퇴직하는 것 ...안정 적이지만
    글쎄요.
    저는 가능한한 여러 곳에서 살고 싶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싶어 해서 인지 남과 다른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매순간을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이제는 마음이 평온해 졌습니다.
    블러그에도 컴맹에서 이제는 많이 늘어서 회사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도록 컴퓨터 실력이 늘었습니다.
    다음 블러그를 하는 2년이 좀 넘는 기간이 제게 준 큰 선물입니다.
    기회가 되면 오프라인에서 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블러그에도 창작이 있더군요.
    황석영씨는 네이버에 연재 했던 자전적 소설을 출판하지마자 베스트 2위에 진입했습니다.
    앞으로 블러그는 블러그 이상의 세계를 만들 겁니다.
    고준성 기자님은 그 중앙에 서 있지요.^^
    제가 컴맹에서 지금까지 변한 것도 다음 이 한 큰 일 중에 하나 입니다.
    생활에 자신감과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