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물음은 진부하다. 그러나 사회가 먼저냐, 미디어가 먼저냐 하는 물음은 진부하지 않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본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사람들 대부분은 미디어를 특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사회가 (신문·방송·인터넷 같은) 미디어를 만들었으므로 사회가 미디어보다 먼저라는 생각은 닭이 달걀을 낳았으므로 닭이 달걀보다 먼저라는 생각처럼 단순해 보인다. 기실, 달걀이 결국 닭을 길러냈듯 미디어 역시 사회를 길러냈기(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가 사회를 만든다’는 마샬 맥루한의 역발상은 결코 도발이 아니다. 그는 다만 진지하게 ‘달걀이 닭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말하고(논증하고) 있을 뿐이다(이때 ‘닭이 달걀을 낳는다’는 것은 반대가 아닌 별개의 사실이다). 아래는 맥루한의 <미디어는 맛사지다>를 부분 발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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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내부에 있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지각하게 한다. 그야말로 감각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 유형-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변화시킨다. 이런 부분이 변화함에 따라, 인간도 변화한다.

- 깃털펜이 말(言)에 종지부를 찍었다. 깃털펜이 신비의 껍질을 벗긴 것이다. 깃털펜은 건축물을 만들고 마을을 세웠으며, 길을 닦고 군대를 모으고 관료주의를 낳았다. 깃털펜은 문명의 주기가 시작되고, 어둠에서 이성의 빛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함에 있어서의 기본 상징어였다. 양피지를 넘기던 손은 마침내 도시를 건설했다.

- 철도는 개인의 시야와 사회적 상호의존성의 제반 유형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철도는 ‘미국의 꿈’을 낳았으며, 그 꿈을 키웠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도시, 사회, 가족세계들을 창조했다. 철도는 또 새로운 노동방식과 경영방식을 창조했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게 했다.

- 텔레비전 세대는 냉혹한 집단이다(주: 텔레비전은 ‘냉혹한 집단’이라는 세대를 만들었다). 이 세대는 다른 어떤 시대의 어린이들-그들은 경솔하고, 더 변덕스러웠다-보다 더 심각하다. 텔레비전 세대의 어린이는 보다 열성적이고 헌신적이다.

- 전자회로체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원시인’들의 다원적 공간개념을 재창조한다. (중략) 우리의 세계는 넓고 연계되어 있는 전혀 새로운 동시성(同時性)의 세계이다. ‘시간’은 멈추었고, ‘공간’은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지구에…하나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지구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거슬러 음향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문자를 사용하던 몇 세기 동안 우리에게서 떠나 있던 원시감정과 부족감정을 다시금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내용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는 미디어의 특성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중략) 문자나 인쇄 테크놀로지는 특정한 분화과정과 전문화과정, 그리고 일탈과정을 촉진하고 조장해 왔다. 전자 테크놀로지는 통합과 몰입을 촉진하고 조장한다. 미디어의 역할에 관한 지식 없이는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